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원작[앨리스 인 원더랜드의 번여판으로서 판타지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책을 읽고 핵심을 요약해보고 저자의 소개를 해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기록하고 싶은 줄거리들
주인공 앨리스가 드 넓은 들판 위 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때 마침 안경을 쓴 이상한 토끼를 발견한 어린소녀는 그 토끼를 쫒아 토끼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토끼굴로 들어갔던 소녀는 한참을 아래로 떨어져지고 뒤죽박죽 이상한 규칙이 가득한 의미없는 환상의 세계에 도착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길을 알 수 없고 헤매이다. 기이한 인물과 사건 사건에 휘말린다. 소녀의 몸이 커진 것인지 방이 작은 것인지, 비현실 적인 몸의 사이즈를 조절하기 위해서 여정 내내 물약을 먹고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고 이내 곧 물담배를 피우며 나타난 애벌래에게서는 키가 커질 수 있는 버섯을 먹을 것을 권유 받지만 모든 것이 수상하고 비범한 상황들에 황당할 뿐이다.
곧 앨리는 매드 해터와 토끼 마치가 주회하는 이상한 티 파티에 참석을 하는데, 그곳은 그냥 항상 티타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었으며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미쳐버린 곳인 것처럼 보인다. 잠시후 마음대로 사라졌다가 불시에 나타나 전혀 도움도 안되고 수수께기 같기만한 말을 하는 미소짓는 고양이 체셔를 만나게 된다.
때마침 카드 하트 여왕이 그녀의 기사가 자신의 타르트를 훔쳤다고 비난하는 재판에 참석하게 된 앨리스, 그 순간 갑자기 커져버린 몸 때문에 뱀이라는 오명과 맹비난을 받아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꿈에서 깨어난 앨리는 모든 것이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 되었음을 깨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그 환상적인 세상이 정말 단순히 꿈이었는지 진짜 였는지 잠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저자 루이스 캐럴의 소개
어린왕자 만큼이나 유명한 책 [Alice In Wonderland]의 작가로 본명은 찰스 러트위지 도그슨이며 루이스 캐롤은 필명이다. 1932년 영궁의 대리스벨리에서 태어난 영국의 작가이자 수학자 그리고 사진가였다.
그는 영리한 단어 놀이, 논리적인 퍼즐, 그리고 기발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수학자이며 논리학자 였으며, 퍼즐과 게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스토리에서도 다양한 요소로 드러난다. 이 모험 이야기는 작가각 옥스포드 대학 교수로 있을 때 만난 앨리스 리델이라는 실제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쓰게된 것이다.
그는 앨리스 인 원더랜드 이외에도 수많은 책과 시를 썼는데, [Through the Looking-Glass], [The Hunting od the snake]
, 그리고 [Silvie and Bruno]가 있다. 이런 가의 글들을 상상력이 풍부한 스토리 텔링과 재치 그리고 창의적인 창작작품이라고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의 재능은 글을 쓰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고 뛰어난 사진작가로서 앨리스 리델을 포함한 많은 아이들의 초상화를 찍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의뭉스러운 수수께끼 같은 면모가 항상 따라다녔기에 그런 분위기를 닮은 많은 측면은 오늘날 학자들과 독자들 사이에서 추측과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기도 한다.
감상 후 나의 생각
앨리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모두가 이 소설을 생각할 만큼 모른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흰색 토끼는 판타지 세계로 우리를 대려다 줄 수 있는 각인 까지도 말이다.
이 모험은 환상적인 세계로 들어가서 경험하는 기발하고 초현실적인 여행을 그려내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이상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만나고 일련의 기괴하고 종종 의미없는 이상한 사건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엔 그것이 모두 낮잠 동안에 잠시 꾼 꿈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정말 꿈이었을까? 실체도 의미도 전혀 없는 그저 사라져 버리는 꿈?
원더랜드의 모든이 것이 다 미쳤다고 말하는 흰 토끼는 어떤 의미에서 였을까? 넌센스가 통하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현실 세계. 앨리스는 흰 토끼에게 묻는다 '내가 미쳤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사실은 진짜인 세상이 어디인건지 아무도 알수 없는 상황 아닌가?
앨리는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의 소스 같은 것을 발견한다. 마치 그 요소가 그곳에 원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나는 그것을 의지의 세계라고 생각 했다. 내가 어느 곳에 있던, 나의 필요에 따라서 몸이 커지고 작아지고 할 수있는 어떤 것. 언젠가 잠이 들듯 말듯 한 순간이 온다면 나의 눈에도 안경 쓴 토끼가 찾아오지 않을까.. 상상하며 책을 덥었다. 불합리한 것이 너무 상식이 되어가는 요즘의 나에게 필요한 동화처럼 보게 만드는 필터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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